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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뮤니티  안되면 되게 하라 사나이 태어나서 한번 죽지 두번 죽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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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되면 되게 하라 사나이 태어나서 한번 죽지 두번 죽나

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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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간


남편이 집을 나갔읍니다. 처음엔 몇 년에 한 번 간간이 들르더니 소식이 끊긴 지 10년입니다. 부인은 간간이 낳은 다섯 아이들을 데리고 살아야 합니다. 


재가는 꿈도 못 꿀 일입니다. 남의 핏줄을 다섯이나 단 여자를 어느 남자가 받아주겠읍니까? 


밭 한 뙈기 논 한 마지기 없는 가난한 시집에서 품앗이 바느질을 해가며 어렵사리 시부모를 모시고 삽니다. 


이대로 가다간 굶어죽겠다고 야산을 개간하기 시작했읍니다. 낫으로 관목을 치고, 톱으로 큰 나무를 베고, 곡괭이로 뿌리를 뽑고, 삽으로 흙을 퍼 구멍을 메우고, 커다란 돌들을 캐어내 지게에 지고 멀리 날라다 버렸읍니다. 밥은 꽁보리밥에 열무김치 몇 쪽, 허기는 질긴 명주실처럼 끊어지지 않고 갈고리풀처럼 달라붙어 떠날 줄 몰랐읍니다. 산비탈에서 넘어지고 쓰러져 죽을 뻔한 것도 여러 차례입니다. 무거운 지게짐이 나뒹구는 옆에서, 배를 부여잡고 모로 누워 숨을 헐떡거리기도 했고, 쓰러져 대자로 누우면 하얀 구름이 뺨을 타고 때묻은 눈물에 섞여 흘러내렸읍니다. 


곱던 손은 엉겅퀴 갈퀴같이 변하고 얼굴은 닥나무 껍찔처럼 변했읍니다. 부스스한 머리에는 이가 집을 짓고 삽니다. 가끔 참새가 찾아와 스낵처럼 이를 잡아먹읍니다. 


몸빼 차림으로 새벽부터 해질녁까지 야산에 붙어사는 여자를 마을 사람들은 비웃었읍니다. 남정네 몇이 붙어도 될까 말까 힘든 일을 여자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라고. 막걸리 안주가 되었읍니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읍니다. 십년 만에 드디어 개간이 끝났읍니다. 농사 지을 수 있는 번듯한 땅이 4,000평이나 생겼읍니다. 그 땅에 감자도 심고 밀도 심고 뽕나무도 심고 과일나무도 심었읍니다. 


생활이 윤택해졌읍니다. 


그러던 어느 날 남편이 돌아왔읍니다. 부인은 땅을 보여주며 자랑합니다. 남편은 놀라 장하다고 칭찬하고 부인을 경외의 눈으로 바라보며 존경하기까지 합니다. 하지만, 시부모의 사랑은 받았지만, 남편의 사랑은 받지 못했읍니다. 남편은, 낮에도 멀리 있지만, 밤에도 멀리 떨어져 잠자리를 펴고 옆으로 오지 않읍니다.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이지만, 집 나간 때보다 더 멀게 느껴집니다. 사랑은 이성 간의 일인지라, 그리고 이성 간의 사랑이란 용모가 중요한지라, 중노동으로 폭삭 늙어 나이보다 20년은 더 들어보이는 부인을 남편은 여자로서 사랑할 수 없읍니다. 여인은 사람으로서는 사랑을 받았지만, 여자로서의 사랑은 가난이 떠날 때 함께 가버렸읍니다. 


방랑벽이 도진 남편이 다시 집을 나갔읍니다. 한 해 뒤에 돌아왔는데 젊은 여자를 하나 달고 왔읍니다. 읍내 술집여자랍니다. 기가 막혔지만 입을 다물었읍니다. 


젊은 여자에게 네가 안주인을 하라며 농사일을 다 맡겼읍니다. 평생 술먹고 노닥거리는 것만 한 젊은 여자가 산비탈 밭에서 며칠 퇴약볕을 받더니 야반도주했읍니다. 새벽녘에 여자를 찾아나선 남편이 읍내로 난 신작로에서 새마을 공사 트럭에 받혀 죽었읍니다. 부인은, 개간한 야산 한 모퉁이에 남편 묘를 썼읍니다. 개간할 때 심층루까지 길어올려 땅에 뿌려 눈물은 마른 지 오래라 나오지도 않읍니다. 


다음 해 부인은, 장성한 아이들에게 세배를 받은 다음 날, 남편의 무덤을 찾아 아직 단디 뿌리를 내리지 못한 떼를 쓰다듬으며 뇌까립니다. “그래도 효도할 줄 아는 품성 좋은 씨를 다섯이나 남기고 가셨구나.” 지난 가을에 미쳐 날려가지 못한 마른 풀이 바람에 날립니다. 한 올만 남은 검은 머리카락도 푸석푸석 세월에 따라 날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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